박지성의 말
[박지성 자서전] ⑧ 두려워 마, 한판 신나게
'박지성 리더십'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내성적이고, 카리스마도 없고,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내가 리더로 불리는 것이 쑥스럽습니다. 박지성 리더십이 마치 조직을 이끄는 모범처럼 묘사될 때는 얼굴이 화끈해질 만큼 부끄럽습니다. 대표팀 주장에 오른 후부터 그 말 때문에 여간 곤혹스럽지 않습니다.
2009년 6월 파주에서 합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훈련 때는 매일 두 명씩 번갈아가며 인터뷰를 하는데 그날은 주영이와 성용이 차례였습니다. 인터뷰하러 숙소를 내려가는 후배들을 붙잡고 "절대 박지성 리더십 얘기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용이가 기자들에게 "지성이 형이 리더십 얘기 하지 말래요" 라고 말하는 바람에 리더십 얘기가 또 화제에 오르고 말았습니다.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이영표와 포옹하는 박지성 (사진제공 : 연합뉴스) |
대표팀 막내이던 시절에 주장 홍명보 형과 같은 방을 쓰는 건 영광이었지만 숨막히는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나를 위해 명보 형은 방을 비워주곤 했습니다. 내가 편하게 생활하라는 배려였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어깨를 툭 치면서 "잘하고 있어" 라는 형의 격려 한마디에 난 가슴이 벅찼습니다. 주장의 격려는 '나도 이제는 대표팀 일원이구나. 나도 대표팀에서 역할을 맡는 선수가 돼가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교토에서 뛰던 시절, 6개월 겪은 미우라는 어느 누구보다도 훈련에 집중했고 열정적이었고 헌신했습니다. 새파란 신출내기인 나를 존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숙사 1층에 방을 잡아 사감 역할까지도 하던 미우라에게서 내게 없는 카리스마가 엿보였습니다.
2003년 에인트호번 시절의 히딩크 감독, 판 보멀, 박지성, 이영표 (사진제공 : 연합뉴스) |
"박지성은 처음에는 힘든 경기를 펼쳤지만 이후 큰 자신감을 얻고 놀랄 만한 속도로 특급 대열에 올라섰다. 이제 그는 맨유라는 훌륭한 팀에서 뛰고 있다"
판 보멀 역시 강력한 팀을 위해 스스로 악역을 맡는 헌신적인 주장이었습니다. 로이 킨과 김남일 형에게서는 곁에만 있어도 선수들을 휘어잡는 힘이 느껴집니다. 로이 킨에게서는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자세 같은 비장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합니다. 매일 화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할 때 화를 내서 팀 분위기를 바꾸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팀이 흔들리고 있을 때 주장의 따끔한 한마디는 흐트러진 열한 명의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는 특효약입니다. 1999년 가시와 레이솔에서 뛰던 명보 형이 "모두들! 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해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 아냐?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서 도와줄 거라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고!" 라는 호통에 가시와의 일본 선수들이 바짝 정신을 차리고 야마자키 나비스코 컵 우승까지 내달렸던 일화처럼 말입니다.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뒤 야쿠부와 인사하는 박지성 (사진제공 : 연합뉴스) |
그런 강력한 힘이 내게는 없습니다.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위압적인 분위기로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런 악역을 도통 해내질 못합니다. 그동안 내가 주장 역할을 무난히 해낼 수 있었던 건 코칭스태프와 형들이 궂은일을 대신해줬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건 내가 리더십이 뛰어나서 대표팀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대표팀의 성적이 좋다 보니 덩달아 나까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끔은 내가 너무 멋지고 착한 역할을 맡는 건 아닌가 하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단지 내가 주장을 맡아 한 일이라곤 선수들의 의견을 코칭스태프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 전부입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난 세류초등학교 6학년 때 주장을 맡아 감독의 지시만 따르다 동료들의 원성을 샀던 실패의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팀 주장 완장이 내 앞에 놓였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선수들의 얘기를 들어 코칭스태프에게 전하자' 는 것이었습니다. 코칭스태프에서 전달하는 사항을 거의 대부분 선수들의 동의를 거치려 했고, 선수들이 바라는 점을 코칭스태프에게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훈련 분위기를 좀 더 밝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입니다.
아르헨티나전 패배 후 이청용을 위로하는 박지성 (사진제공 : 연합뉴스) |
결코 주장에 어울리지 않는 내가 엉겁결에 주장을 맡게 됐습니다. 남일이 형이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해 대타로 주장을 맡은 후로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장기 집권(?)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주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왜 주장 역할을 계속하느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로 답하고 싶습니다.
우선 한국 축구를 위해 내게 주어진 사명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비록 부끄러움 잘 타고 카리스마도 없고, 통솔력이 떨어진다 해도 나만의 방식으로 주장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던 것처럼 주장도 하면서 늘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94 미국월드컵 우승팀 브라질의 주장 둥가(현 브라질 대표팀 감독)를 떠올렸습니다. 나와 같은 포지션을 뛰었던 둥가는 내 어린 시절 가장 존경했던 축구 선수였습니다. 그가 그라운드 위에 있을 때면 사람들은 팀이 승리할 것을 믿었다고 합니다.
둥가가 미국월드컵에서 모두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듯 나도 남아공에서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위치에서도 팀의 중심을 잡는 존재감으로, 강하지는 않지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통솔력으로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장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와 첫 경기. 애국가가 울립니다. 내 심장도 함께 뜁니다. 휘슬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전쟁의 시작입니다. 다른 주장들은 "나를 따르라!" 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즐기자.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자신이 만족하는 바로 그 플레이를 보여라. 우리 모두를 위해"